[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2편 '속이 단단한 놈'…수색대에 차출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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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2편 '속이 단단한 놈'…수색대에 차출된 과정
  • 북한선교신문
  • 승인 2020.10.05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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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신문에서는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의 군 생활 이야기를 담은 '슬기로운 군대생활'을 연재합니다. 대한민국 생활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최태영 영남신대 조직신학 교수.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

1. 사단에서 운영하는 신병교육대에서 2개월 훈련받는 동안 나는 한 가지 소소하지만, 특혜라 할만한 것을 누렸다. 입소한 지 2주쯤 지난 어느 휴식시간에 선임 조교가 전체 신병들을 대상으로 몇 가지 조사를 하는데, 그중에 내 귀에 딱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너희 중에 바둑 둘 줄 아는 놈 손들어 보라.” 몇 명이 손을 들었고 그중에 나도 있었다.

그러자 조교가 손든 신병들에게 일일이 너 몇 급이냐고 물었다. 7급, 9급, 6급, 내 차례가 되어 1,2급 쯤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교가 환한 얼굴로 나를 일어나게 하고는 인솔하여 신병교육대에서 제일 높은 교육대장실로 데리고 갔다. 

2. 교육대장은 대위였는데, 육군사관학교(육사)가 아닌 삼사관학교(삼사) 출신이지만 동기 중에 제일 먼저 중위와 대위 계급장을 단 사람이라 하였다. 육사와 삼사 출신 사이에는 상당한 차별이 있었는데, 내가 보니 적자(嫡子)와 서자(庶子) 정도의 차별이었다. 그것은 맨 처음 소위에서 중위로 승진할 때 나타난다. 육사는 4년 과정이고 삼사는 2년 과정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졸업하면 둘 다 소위로 임관하지만 같은 소위라도 육사 출신과 삼사 출신이라는 엄연히 다른 족보에 따라 장교 생활을 하게 된다.

따라서 육사 출신은 삼사 출신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보직은 대부분 육사 출신이 차지하고, 아마도 삼사 출신은 진급에서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나중에 들은 바지만 강원도 전방(前方) 부대에 근무하는 소대장 중대장은 대부분 삼사 출신이란다. 

3. 우리 교육대의 대장인 김 대위는 실력도 있지만 행운아였다. 그는 소위 시절에 무장(武裝) 공비(共匪)를 잡는 공을 세웠고, 그로 인하여 곧바로 특진(特進)함으로써 육사 출신 못지않은 스펙(specification)을 쌓게 된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에 전방에 있는 장교들이나 직업 부사관(副士官)들이 출세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바로 무장 공비 잡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장 공비의 출현은 그 지역 장교들에게는, 요즘 말로 로또 당첨 기회를 잡는 것과 같았다. 

4. 어쨌든 김 대위는 교육대 대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바둑을 배울 계획을 세웠는지 훈련병 중에서 바둑 선생을 물색(物色)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군대에서 하늘같이 높으신 김 대위님을 지근(至近) 거리에서 마주하고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김 대위는 멋있는 신사였다. 은근히 매력이 있었다.

어리바리한 훈련병인 나는 교육대 대장을 1:1로 마주하여 바둑을 가르친다는 사실에 아슬아슬한 쾌감을 느꼈다. 김 대위도 나의 가르침을 좋아했고, 가끔 정겨운 담소도 나누었다. 그리하여 나는 어렵지 않게 김 대위를 신뢰하게 되었다. 친구처럼 느껴졌다. 나이를 따져 보지 않았지만 아마 엇비슷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묵묵히 바둑만 가르쳤지만, 나중에는 훈련병(訓鍊兵)들의 애로사항을 전달하는 역할도 하였다. 자연히 소대장과 분대장 곧 교육 조교들도 나를 다른 신병들과는 달리 약간 예우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5. 교육 훈련 기간 2개월이 끝나가자 우리는 자대(自隊) 배치를 기다리게 되었다. 먼저 사단 본부에 필요한 인원을 선발해 가고, 다음에 사단 수색대에 맞는 건장한 놈들을 차출(差出)하고, 다음으로 사단 휘하의 각 연대에서 남은 인원을 나누어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 순서대로 제일 먼저 사단 본부 작전과에서 와서 한 명을 뽑아갔는데, 그는 나와 같은 분대의 1번이었다. 나는 2번이었는데, 내가 아는 바로는 훈련병 전체에서 나 다음으로 학벌이 좋은 친구였다. 모두 그 친구를 부러워했다.

그 친구는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제일 먼저 떠났는데, 나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였다. 2달 동안 항상 나란히 행동했고, 또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인연이 있었으므로 남달리 동지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군대 생활 중에 한두 번 연락한 적이 있었고, 한참 후 전역할 때 사단 본부에서 만나 함께 사단장에게 전역신고를 하고 서울까지 같이 와서 헤어졌었다. 

6. 그가 떠난 직후 사단 수색대(搜索隊)에서 10명 정도 차출하러 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모두 몸을 움츠리고 차출되지 않기를 바랐다. 수색대는 가장 위험하고 고생을 많이 하는 곳이므로 최악이라는 소문이 난 것이다. 마침내 수색대대 인사참모라는 중위 계급장을 단 사람이 나타났는데, 아주 호남형인데다 우리 교육대장하고 매우 가까운 듯이 보였다. 분대장 조교의 말을 들으니 그는 교육대장과 삼사 동기동창이며 절친이라 하였다.

오전 교육이 끝날 때 그 인사참모라는 중위가 와서 수색대로 차출될 후보라며 이름을 불러 주었다. 10여 명을 호명하는데 뜻밖에도 거기에 내 이름이 있었다. 호명이 끝나자 그 인사참모는 말하기를 호명한 사람을 다 데려가는 것은 아니고 교육대장과 상의한 다음 몇 명은 탈락시킬 것이라 하였다. 

7. 호명이 안 된 훈련병들은 모두 다행으로 여기면서 호명된 우리를 향해서 안 됐다며 위로의 말을 하였다. 나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왜 내가 거기 뽑혔을까? 수색대는 가장 건장(健壯)한 놈들이 가는 곳이고, 호명된 다른 훈련병들은 한눈에 봐도 덩치들이 있어서 수색대원으로 딱이라 하겠지만, 나는 그들과 비교도 안 되게 허약했던 것이다. 호명되었다 하여 다 수색대로 차출되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후보라 하였으니, 거기에 기대를 걸고 교육대장 김 대위에게 부탁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식사 후 대장이 부르기를 기다려 설레는 마음으로 가서 바둑판 앞에 마주 앉았다. 바둑 지도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조금 전 수색대에 차출되었는데, 몸도 약한 제가 거기에 맞겠습니까?” 그랬더니 교육대장이 상황을 이미 알고 있는 듯이 대답했다. “다들 몰라서 그러는데, 수색대가 오히려 근무하기가 좋은 곳이다. 훈련은 좀 세게 받겠지만 생활은 편하다. 원하지 않으면 빼 줄 수 있다만, 나는 자네가 거기 가기를 추천한다.” 나는 이미 김 대위를 신뢰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그 순간 결심했다. 그래, 수색대로 한번 가보자. 

8. 그런데 한참 후 알게 된 사실은 김 대위가 자기 친구의 부탁을 받고 나를 수색대에 추천한 것이었다. 수색대대의 인사참모는 사전에 친구인 교육대장 김 대위와 연락하는 가운데 제일 학벌 좋고 행정사무를 잘 볼 수 있는 신병 하나를 확보해 달라고 하였다. 수색대대 본부의 행정병이 1개월 후 전역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메꿀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 대위는 서울대 졸업하고 예수 믿는 한 놈이 들어와 있는데, 다른 데 보낼 수 있지만, 네가 원하면 붙들어 놓겠다 한 것이었다. 

9. 그리고 일주일쯤 후에, 차출된 신병(新兵)들이 군용트럭을 타고 수색대대 본부에 도착했다. 본부 대원들이 신병들이 묵고 있는 곳으로 구경 와서 짓궂은 질문을 하며 군기(軍紀)를 잡으려 했다. 그때 신병 중 한 명과 본부의 한 병장이 서로를 알아보고는 반갑다고 환호를 하며 포옹을 하며 지랄을 떨었는데, 이게 나와 무관치 않은 일이었이 곧 드러나게 되었다.

그 병장이 바로 1개월 후 전역한다는 그 인물이고, 그 후임으로 내가 차출되어 온 것인데, 거기서 자리가 뒤바뀌고 말았다. 그 친구가 인사참모에게 자기 고향 동생인 그 신병을 자기 조수로 쓰게 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였고, 인사참모는 고심하다가 그것을 받아들이고는, 나를 1중대로 내려보내기로 한 것이다. 

10. 그다음 날 우리 신병들은 수색대대장에게 전입신고(轉入申告)를 했다. 중령인 대대장이 우리를 쭉 둘러보더니 내 앞에 와서 탐탁지 않다는 투로 인사참모에게 말했다. “이 친구는 좀 약하게 보이는데?” 그러자 인사참모 중위가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잽싸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보기에는 그래도 속은 단단합니다.” 대대장이 지휘봉으로 내 가슴을 툭 쳤다.

내가 “옛, 이병 최.태.영” 하고 소리를 지르자, 대대장이 “음, 속은 단단한 것 같네!”라는 말로써 전입신고가 무사히 끝났다. 나는 인사참모가 한 그 말이 평생 잊히지 않는다. 속이 단단하다니, 자기가 뭘 안다고 말이다. 


최태영 교수는 경북고등학교, 서울대 중문학과(B.A.),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원 대학원(Th.M. Th.D.)을 졸업했습니다.

美 Yale University Divinity School(Research Fellow) 과정을 거쳤고, 1990년 3월~2020년 8월까지 30년 동안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영남신대 은퇴교수입니다. 또 '교회를 위한 신학 발전'을 위해 연구하는 '교회신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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