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위용 드러낸 전라감영…“전북 전주의 자긍심이자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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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위용 드러낸 전라감영…“전북 전주의 자긍심이자 미래”
  • 북한선교신문
  • 승인 2020.10.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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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북과 전남, 제주를 관할했던 전라감영의 재창조 복원 기념식이 열린 7일 전북 전주시 전라감영에서 김승수 전주시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2020.10.7 /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전주=뉴스1) 전라감영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비록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전라감사가 업무를 본 선화당 등 핵심 건물들이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전라도를 관할한 관청이었다. 다른 감영과 달리 단 한 번도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당시 전주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라감영, 나주가 아닌 전주에 위치한 이유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를 합친 말이다. 그렇다면 전라감영이 나주가 아닌 전주에 설치된 이유는 무엇일까. 세종실록에는 ‘평안도 평양감영, 전라도 전주감영, 강원도 원주감영, 황해도 해주감영 등이 모두 서울에서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기록이 있다. 전주가 나주보다 한양에서 가까웠던 게 그 이유라는 것이다.

전주가 교통의 요지이자 생산물이 풍부했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감영을 설립할 곳으로 나주는 하도에 치우쳐 있어 온편치 못하고 전주는 상도에 치우쳐 있으나 영남과의 접경이 멀지 않으며 호서와도 가깝고 물력도 나은 듯하다’는 선조실록 기록이 있다.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것도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전주는 전주이씨 시조인 이한 등 태조 이성계의 선조들이 살았던 곳이다. 비슷한 예로 함경감영이 있다. 함경감영은 함흥에 설치됐다 영흥을 거쳐 다시 함흥으로 옮겨졌는데, 함흥은 태조가 살았던 곳이고, 영흥은 태조가 태어난 곳이다.

함경감영 등 다른 감영들이 임진왜란 등의 이유로 터를 이리저리 옮긴 것과 달리 전라감영은 조선왕조 500년 내내 전주에서 떠나지 않았다.그만큼 당시 전주의 위상은 높았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북과 전남, 제주를 관할했던 전라감영의 재창조 복원 기념식이 열린 7일 전북 전주시 전라감영에서 송하진 전북도지사와, 김영록 전남도지사, 김승수 전주시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10.7 /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500년 통치, 그리고 폭발사고

감영은 관찰사, 도백 등으로도 불렸던 감사가 행정권은 물론이고 군사권과 사법권까지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던 곳이다. 전라감영에는 전라감사가 업무를 보고 휴식을 취한 선화당과 연신당, 감사 가족들이 지낸 내아와 내아 행랑, 비서실장인 예방비장이 일하는 응청당, 보좌관인 비장들의 집무실인 비장청 등이 있었다.

관찰사 심부름꾼이자 전주대사습놀이 주역으로 알려진 통인들 대기소인 통인청, 약재를 다루는 심약당, 법률을 다루는 검률당, 한지를 만드는 지소, 책을 출간하는 인출방, 진상품 부채를 만드는 선자청도 있었다.

전주는 지난 1896년 전라도가 전북과 전남으로 나뉘고 제주가 분도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전라감영은 1951년 한국전쟁 중 폭발사고로 완전히 사라졌다. 전라감영이 사라진 지 1년 뒤인 1952년 감영 자리에 전북도청사가 들어섰다.

전라감영 복원 논의는 전북도청사 이전 계획이 확정된 지난 1996년 시작됐다. 본격적인 복원사업은 도청사가 철거된 이후인 2017년 11월 시작됐다. 복원사업에는 104억원이 투입됐다. 그리고 2년 10개월 만에 1단계 사업이 완료됐다.한국전쟁 중 폭발사고로 사라진 지 약 70년 만이다. 본격적인 복원 논의가 시작된 지는 20여년 만이다.

새로 태어난 전라감영에는 웅장한 외관과 우아한 곡선의 팔작지붕이 돋보이는 선화당과 내아, 내아행랑, 관풍각, 연신당, 내삼문, 외행랑 등 7동의 핵심건물이 들어섰다. 선화당 내부에는 1884년 전라감영을 방문한 미국 공사관 무관인 조지 클레이튼 포크의 사진자료를 재현한 6폭의 디지털 병풍이 있다.

선화당 동쪽에는 관찰사가 민정과 풍속을 살피던 누각인 관풍각이, 선화당 북쪽에서는 200년 된 회화나무가 서 있다. 회화나무 근처에는 관찰사가 휴식을 취하던 연신당, 관찰사 가족들이 지내던 내아와 내아행랑이 있다. 다가공원에 있던 전라감사 선정비도 이곳으로 옮겨졌다.

조선시대 옛 모습을 되찾은 전라감영 모습. /뉴스1 © News1 임충식 기자

◇전라감영 전주의 자긍심이자 전주의 미래

이번 전라감영 복원은 단순히 선화당 등 핵심건물 복원의 의미를 넘어선다.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2016년 전라감영 발굴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옛 전북도청사 부지가 단지 조선시대의 전라감영 부지일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 때부터 1300여 년간 관청 자리였음을 보여주는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고 밝혔다. 전라감영 터가 적어도 1300년 동안 주변을 통치했던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이다.

전주와 전북에서는 전라감영 복원을 계기로 가야와 백제, 후백제, 동학농민혁명 등 찬란한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주시는 전라감영을 전주의 미래가 담긴 핵심공간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전라감영 진상품을 손수 만드는 체험 교육과 전통음악 공연도 하고, 전주대사습놀이 무대도 만들기로 했다. 특히 한옥마을과 풍패지관(객사) 등을 연결하는 관광벨트 구축을 통한 구도심 활성화에도 공을 들일 계획이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전라감영 복원은 단지 건축물 복원이 아닌 그 속에 담긴 전주의 정신과 가치를 복원하는 일”이라며 “동학농민혁명 등 근대 민주주의가 시작된 곳이자 전라도 번영의 상징이었던 전라감영을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핵심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시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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