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3편 '일당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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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3편 '일당백'
  • 북한선교신문
  • 승인 2020.10.1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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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신문에서는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의 군 생활 이야기를 담은 '슬기로운 군대생활'을 연재합니다. 대한민국 생활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

1. “탕~~~ㅂ!” 이것은 사단 신병교육대에 이송된 후, 잠시 이해할 수 없었던 경례 구호였다. 논산훈련소에서는 “충성!”이었는데, 여기서는 “탕~~~ㅂ!” 이라니, 이게 도대체 뭔 소릴까?

교육대 선임 조교가 훈련생도 전체를 대표하여 교육대장에게 경례를 붙일 때, ‘탕’은 배에 힘을 주고 큰소리로 외치고, 약간 시간을 끌었다가, ‘ㅂ’은 들릴 듯 말 듯 살짝 갖다 붙인다. 뭔가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2. 총소리를 흉내 낸 구호일까? ‘탕’ 하고 한 방에 적을 제압하자, 그런 뜻일까? 이삼일 후에 선임 조교가 바뀌었는데, 그의 경례 구호는 좀 달랐다. “땅~배!” ‘탕’이 ‘땅’으로 바뀌고, 중간에 시간 끄는 것이 짧아지고, 그리고는 ‘배’라고 갖다 붙인다. 이건 또 무슨 의미일까? 땅에 배를 꼭 붙이고 버티자는 뜻일까? 알 수 없었다.

같은 단어를 한 사람은 ‘탕~~~ㅂ’라고 외쳤고, 또 한 사람은 ‘땅~배’라고 외쳤는데, 과연 그 단어가 무엇일까? 신병교육대에서 처음 며칠간은 그 고된 와중에서도, 그게 그렇게 궁금했었다. 

3. 교육대장이 강의하는 첫 번째 정훈교육 시간에 비로소 그 의미가 밝혀졌다. 나의 추측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당백(當百)”이란다! ‘일당백’의 준말, 즉 아군 한 명이 적군 일백 명을 무찌르자는 그런 뜻이었다. 뜻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우리 사단과 마주하고 있는 북한 부대의 구호는 당천(當千)이란다. 그때나 지금이나 ‘뻥’ 하나만은 누구 못지않은 그들···. 궁금증은 풀렸지만, 왠지 아쉬웠다. 애초에 내 귀가 잘못 들었던, ‘탕~~~ㅂ!’가 그리웠다. 그 선임 조교는 ‘당백’을 어찌 그렇게 멋있게 발음했을까? 2년 후 전역할 때까지 나는 그 선임 조교의 구호가 그리웠었다. 

4. 자대(自隊)인 수색대대로 왔을 때 ‘당백’ 경례는 한동안 나에게는 일종의 고문(拷問)으로 변했다. 훈련소에서는 모두 동기들이므로 상호간 경례를 하지 않았지만, 자대는 사정이 달랐다. 전부 고참 아니면 상관들이므로, 누구와 마주치든지 ‘당백’ 하며 거수경례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고참에게도 만날 때마다 경례를 붙여야 했다. 내무반에서도 ‘당백’, 연병장에서도 ‘당백’, 작업하러 나가서도 ‘당백’, 가는 곳마다 고참만 만나면 ‘당백’이었다. 끔찍한 일 아닌가? 

5. 가장 어색하고 힘든 것은 기상(起床) 직후였다. 기상 호각 소리와 함께 불침번이 ‘기상’ 하고 외치면, 불침번보다 기수가 낮은 졸병들은 일제히 ‘기상’을 복창하고는 즉시 일어나, 침상을 정리하고, 작업복(전투복)과 전투모를 쓰고, 전투화를 신은 다음, 가까이 있는 고참으로부터 시작하여 내무반의 모든 고참들에게 일일이 찾아가서 ‘당백’ 하며 경례를 붙인다. 혹시라도 실수하여 빠뜨리는 일이 발생하면 그 고참에게 완전히 찍힌다.

그래서 같은 고참에게 또 하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30명가량 되는 소대원 고참들에게 일일이 당백을 외치며 거수경례하는 이 시간은 나처럼 소심하고 비사교적인 사람에게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신병인 나뿐 아니라 모든 사병이 자기보다 높은 고참에게 경례를 붙여야 했는데, 그러니까 약 3분 정도는 ‘당백’ 구호로 소대 내무반이 시끄러워진다. 소대에 배치된 후 첫날 아침에 이 경험을 하면서, 앞이 캄캄해졌다. 

6. 경례에도 질서와 법도가 있었다. 졸병이 고참에게 경례하면 고참은 졸병에게 간단히 답례한다. 경례하고 나서 반드시 고참의 답례를 받아야 한다. 고참이 답례하기 전에 다른 고참에게로 가면 박살이 난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경례의 순서다. 고참 순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참이라도 높은 고참을 제치고 낮은 고참에게 먼저 했다가는 위아래도 모르는 놈이 된다.

그래서 제일 먼저 왕고참에게 가서 경례하는데, 가는 도중에 다른 고참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할까? 그 경우에는 그에게 경례해도 된다. 왕고참에게 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양해가 된다. 그러나 왕고참이 위치한 방향이 아닌 곳에 있는 다른 고참에게 먼저 경례를 하면 경례한 졸병이나 경례 받은 고참이나 다 박살 난다. 반드시 왕고참에게 경례하고, 다음에 두 번째 고참에게 가서 경례하고, 이렇게 차례대로 해야 한다. 처음에는 누가 더 고참인지 알지 못해서 실수를 연발한다. 그래서 소대에 배치된 다음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소대원 전체의 서열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7. 처음 한동안은 실수를 안 할 수 없으니까 고참들이 양해를 해 주지만, 딱 하나 처음부터 절대 봐주지 않는 것이 있었다. 하사(下士)에게 경례하는 것이다. 우리 소대에는 분대장 직책으로 두 명의 하사가 있었다. 한 소대에 3개 분대가 있어서 2개 분대는 하사들이 분대장을 했고, 1개 분대는 선임 병장이 분대장을 했다.

교육과 훈련 시간에는 하사들이 분대장으로서 역할을 하지만 내무반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멋도 모르고 분대장인 하사에게 먼저 경례를 했다. 하사들이 계급이 높으므로 그것이 맞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맞는 것이 아니라 맞을 짓이었다. 

8. 알고 봤더니, 하사와 병들 사이에는 극심한 알력이 있었던 것이다. 하사들이 계급은 높지만, 짬밥(군대 밥)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사들은 계급으로 하자고 하고, 병들은 짬밥 수로 서열을 정했다. 군대는 짬밥이라는 것이다. 짬밥 수로 치면 한 하사는 상병 수준이고, 또 한 명은 일병 수준이었다. 그래서 계급 무시하고 짬밥 수로 따져서 서열을 정해 놓았는데, 신병인 내가 그 질서를 깨뜨린 것이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소대에 가 있던 두 명의 동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각 소대로 배치된 이튿날 우리 세 명은 어두침침한 곳에 불려갔다. 거기서 각 소대의 군기를 맡은 고참들에게 일장 훈시를 들었다. 앞으로 지시가 있을 때까지 하사들에게는 일절 경례하지 마라, 경례하는 놈은 죽여버릴 것이라는 엄포를 듣고, 맛보기로 몇 대 까이고 풀려났다. (^^)

9. 소대 내무반에서 아침 인사가 끝나면 밖으로 나와서 일과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제부터의 큰 과제는 다른 소대의 고참들에게 흠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고참들은 틈만 나면 신병들에게 트집을 잡고는 골탕을 먹였다. 주된 트집이 자기를 보고도 경례를 안 했다, ‘당백’ 소리가 약하다, 군기가 빠졌다, 대학 나온 놈들은 그렇게 하냐, 등이었다. 하여 그들에게 흠을 안 잡히기 위하여 두 눈 부릅뜨고 한 20m 전방에 누가 나타나면 그냥 ‘당백’ 하고 고함을 지르며 다녔다.

하루는 나의 동기인 심 이병을 갑자기 마주쳤는데, 동시에 ‘당백’ 하며 거수경례를 했다. 그러고는 서로 멋쩍어서 웃음이 나왔지만, 옆에 있는 고참들 때문에 속으로 삼켰다. 또 다른 동기인 김 이병이 저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조용히 가까이 가서 어깨를 툭 쳤는데, 그는 군기가 바짝 든 나머지, 큰 소리로 ‘당백’ 하며 나에게 거수경례를 붙이는 것이었다. (^^) 우리는 이렇게 기상해서 취침할 때까지 하루에 ‘당백’을 한 300번 정도는 외쳤을 것이다. 

10. 수색대 생활을 시작하면서 겪은 ‘당백’ 거수경례 문화를 앞으로 2년 동안 어떻게 감당하지, 하고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자 그것이 더는 괴로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당백을 외치며 거수경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오히려 은근 재미도 느꼈다. ‘당백’ 하며 거수경례를 주고받는 짧은 순간, 그 고참과 무언가 모를 우정이라 할까, 동지(同志)라는 의식이 느껴졌다.

‘당백’을 하면 할수록 점점 가까워지고 정이 드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였다. 인간은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매우 높다는 것, 어떤 상황이 닥치면 무엇이든지 다 잘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게 싫은 것도 반복하다 보면 재미있는 일로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이게 군대라는 조직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최태영 교수는 경북고등학교, 서울대 중문학과(B.A.),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원 대학원(Th.M. Th.D.)을 졸업했습니다.

美 Yale University Divinity School(Research Fellow) 과정을 거쳤고, 1990년 3월~2020년 8월까지 30년 동안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영남신대 은퇴교수입니다. 또 '교회를 위한 신학 발전'을 위해 연구하는 '교회신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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