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5편 '똥 맛(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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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5편 '똥 맛(2)'
  • 북한선교신문
  • 승인 2020.10.1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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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신문에서는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의 군 생활 이야기를 담은 '슬기로운 군대생활'을 연재합니다. 대한민국 생활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

1. 훈련병이 교육 시간 중 제일 기다리는 것이 10분간 휴식이다. 이 시간에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변소에서 똥 누는 것이다. 나는 젊었을 때 늘 변비를 끼고 살았다. 훈련소에서도 최대의 애로사항이 변비였다.

아침 기상 때부터 배설을 마칠 때까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교육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그게 해결되어야 비로소 일과를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아침 식사하기 전까지 이것을 해결 못 하고 교육이 시작되면 10분간 휴식 시간만 기다렸다. 모든 훈련병이 그 시간을 기다렸지만, 나처럼 절실하게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10분간 휴식 실시!” 라는 구령이 나면 모두 “실시!”라고 복창하고 자리에서 뒤로 자빠져 눕거나, 그늘진 곳을 찾아가는데, 그 나머지는 전부 변소로 달려갔다. 변소로 향하는 인원이 전체의 2/3 정도 되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일렬로 서서 소변을 본 후 담배를 피우지만, 일부는 통시 칸에 들어가서 똥을 눈다. 변소를 통시라고 하는 것은 당시의 변소가 재래식이었기 때문이다. 직사각형으로 파인 구멍 양옆에 발을 딛고 쪼그려 앉아 똥을 누는 변소를 우리 고향에서는 통시라고 불렀는데, 뒤로 ‘통’, 앞으로 ‘쉬’ 하므로 통시라고 한다는 해석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 시골에 있는 통시와는 달리 군대 통시는 폭은 좁지만 길이는 매우 길었다. 

2. 훈련병에게 있어서 변소는 낭만적인 공간이었다. 하루 중 가장 한가하고, 사사로운(private)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만은 사회에 있을 때와 꼭 같이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변소 곧 통시가 이렇게 행복한 공간임을 깨달은 후에 처음 며칠간 변소 가는 즐거움과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변소 사용 규정이 바뀌었다. 변소의 숫자, 그러니까 통시 칸의 수가 적어서 쉬는 시간 10분 안에 훈련병들의 용무를 다 마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변소는 언제나 찾아오는 훈련병들로 대만원이었다. 변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휴식 시간이 끝나면 볼 일도 못 본 채 도로 돌아가기가 일쑤였다.

용변 문제로 교육에 지장이 생기자 어느 날 훈련 조교가 군대식 통시 사용법을 강의했다. 통시 한 칸에 한 명씩 들어가지 말고 두 명씩 들어가는 것이다. 들어가서 한 명은 앞에서 누고 다른 사람은 뒤에서 반대 방향으로 앉아서 누는 것, 그러니까 엉덩이를 맞대고 앉아 누는 것이다. 

3. 훈련 조교의 말을 듣고 보니 참 좋은 방법이라고 모두 생각했다. 통시 칸이 두 배로 늘어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즉시 그렇게 실시했다. 한 칸에 두 사람이 들어가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앉아서는, 경쟁하듯이 용무를 보는 것이다.

군대에서는 모든 것이 경쟁이기 때문에 그것도 일종의 훈련이라 생각했다. 이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의기양양하게 휘파람을 불며 먼저 나가고, 문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훈련병이 곧바로 들어와서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렇게 되니 통시에서 느긋하게 똥 누던, 그 사사로운 행복도 그 후로는 즐길 수 없게 되었다. 

4. 나는 변비가 있어서 이 경쟁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사실 나처럼 변비 있는 사람이 그래도 똥을 누기 위해서는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한다. 초조한 마음으로 빨리 누려고 하면 오히려 더 안 된다. 그리고 주위에 신경 쓰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느긋한 환경이 되어야만 똥도 안심하고 편안하게 나오는 것이다. 변소사용 규칙이 바뀌면서 대부분 혜택을 입었지만 나는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5. 한번은 통시에 같이 들어간 놈이 먼저 끝내고 나간 후, 다음 훈련병이 들어와 바지를 내리고 앉자마자 그냥 바방 하면서 쏟아내는데, 나는 그만 기가 죽어서 영 일을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낑낑거려도 그가 나가기 전에는 변이 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친구는 속에 있는 것을 단번에 다 배설하고 난 뒤에, 나를 힐끗 돌아보더니 주머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어 불을 붙이고는 여유 있게 태우기 시작했다. 그는 나보다 뒤에 들어왔기 때문에 내가 나갈 때까지는 거기에 앉아 있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조금 있으니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료들이 아우성을 쳐 댔다. “휴식 시간 다 끝나가는데 두 놈 다 빨리 안 나오고 뭐 하노” 하고 통시 문을 두드려 댔다. 그중 한 놈이 고함을 질렀다. “야, 우리도 똥 맛 좀 보자!” 그 말을 듣고 몹시 미안한 중에도 웃음이 났다.

왜냐하면, ‘똥 맛’이라는 게 있는지, 그리고 그게 그렇게 좋은 건지는 군대 오기 전에는 상상도 못해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훈련병들은 그 잘난 ‘똥 맛’도 마음대로 즐길 수 없었다.


최태영 교수는 경북고등학교, 서울대 중문학과(B.A.),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원 대학원(Th.M. Th.D.)을 졸업했습니다.

美 Yale University Divinity School(Research Fellow) 과정을 거쳤고, 1990년 3월~2020년 8월까지 30년 동안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영남신대 은퇴교수입니다. 또 '교회를 위한 신학 발전'을 위해 연구하는 '교회신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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