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6편 '첫 휴가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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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6편 '첫 휴가 스캔들'
  • 북한선교신문
  • 승인 2020.10.2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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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신문에서는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의 군 생활 이야기를 담은 '슬기로운 군대생활'을 연재합니다. 대한민국 생활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최태영 영남신대 조직신학 교수.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

1. 지난 이야기에서처럼, 나는 신병교육대에서 김 대위님과 바둑을 두는 것이 계기가 되어 수색대에 가게 되었다. 김 대위님은 멋있는 분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데, 그 후의 동정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분의 함자도 잊어버렸다.

그 이후 바둑은 얼마나 느셨는지 궁금하다. 바둑에 있는 전략과 전술을 잘 활용하여, 무장공비를 잡은 것 이상의 전공을 세우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장군이 되셨으면 좋겠다. 내친김에 바둑 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미룬다. 그것은 입대한 지 1년도 더 지난 다음의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첫 휴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 나의 첫 휴가는 하나의 스캔들로 남아 있다. 

2. 대대장에게 전입신고를 한 며칠 후에 제1중대로 가게 되었다. 중대본부 행정계인 N 상병이 와서 나, 심 이병, 김 이병 이렇게 3명의 신병을 지프에 태우고 중대본부로 가는 길이였다.

N 상병은 신병인 우리에게 너희는 1중대에 온 것을 행운인 줄 알라, 하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 지금 1중대는 GP에서 철수 중이라는 것이다. 수색대대는 3개 중대가 있는데, 중대 단위로 2개 중대가 GP 근무를 하고, 1개 중대는 훼바(FEBA)라 불리는 중대본부에 내려와서 재교육 및 훈련을 받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었다. GP 근무를 6개월쯤 하고 본부로 철수하면 곧바로 휴가부터 가는 것이다.

N 상병은 그렇게 설명하고는 우리 1중대가 훼바로 철수하고 곧 휴가를 가는데, 신병인 너희들도 이번에 함께 휴가를 가게 될지 모른다고 말하면서 “어때, 좋지?”라며 묻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 하지 말아야 할 대답을 어리바리한 내가 하고 말았다. “네, 좋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N 상병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면서 “이 ㅅㄲ가 완전 군기가 빠졌네, 자대(自隊) 오자마자 휴가를 가겠다니,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너희 고참들은 GP에서 6개월 ㅈ뺑이 치고 내려와 휴가 가는데, 너희들은 한 게 뭐 있다고 휴가를 가냐 이 ㅅㄲ들아” 하면서 나와 우리 동기들을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느꼈다. 완전히 낚여버린 것이다. ‘아닙니다. 저는 휴가 갈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중에 나의 후견인을 자처한 김 상병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김 상병과 N 상병은 동기였다. 

3. N 상병은 중대에 도착하기까지 계속 공포의 멘트를 날렸다. ‘다른 애들은 다 휴가를 가더라도 최태영, 너는 휴가 못 가게 하겠다, 너 앞으로 군대 생활 피눈물 나게 해 주겠다’라고 계속 씨부렁대었다. 나는 낭패감과 함께 앞날이 암담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N 상병은 중대 살림을 도맡고 있는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고참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그가 전역할 때까지 다시는 그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 또 조심하며 지냈다. 

4. 그러나 그는 그날 나에게 한 폭언을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그의 동기이자 나의 후견인이 된 김 상병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악하게 굴지는 않았다. 본부에 도착한 다음 날 나에게 큰 마분지를 주면서 글씨를 한번 써보라 하였다.

나는 글씨는 잘 못쓴다고 대답한 후 정성 들여 썼는데, 그것을 보고는, 서울대 나온 놈이 글씨를 이따위밖에 못 쓰냐, 본부 행정병으로 좀 써볼까 했더니 안 되겠다, 그냥 GP로나 가라 하였다. 나는 맥이 탁 풀렸다. 대대 본부에서도 밀리고, 중대 본부에서도 밀리고, 도대체 내가 수색대에서 뭘 잘할 수 있겠나 싶어 낙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일에 어떤 분의 뜻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것은 얼마 후 나의 후견인이 되어 준 그 김 상병의 이야기를 듣고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말이다. 

5. 1중대가 GP에서 철수하고, 심 이병은 1소대에 배치되고 나는 2소대에, 김 이병은 3소대에 배치되어 신고식을 하고 자대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중대 내부에서는 3명의 신병을 이번 휴가에 넣어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토론했다 한다. 그리고 그때 우리 소대의 김 상병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모두 함께 휴가를 가기로 함으로써, N 상병의 공갈은 무위로 그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입대한 지 불과 2달여 만에 첫 휴가를 얻었다. 당시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개 6개월 지나야 첫 휴가를 얻고, 재수 없으면 1년이 넘도록 휴가를 못 가는 예도 있었기 때문이다.

휴가는 3개 소대 가운데 2개 소대가 먼저 갔다 오고, 그다음에 나머지 1개 소대가 간다. 휴가를 마치면 다시 GP에 올라갈 때까지 약 2개월 동안 피나는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DMZ 내 산 정상에 있는 GP에 올라가서 30여 명가량의 대원들이 6개월간을 동고동락하며 24시간 적정(敵情)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6. 2개 소대 60여 명이 함께 휴가를 가는데, 소양강 상류까지 대대본부에서 지원하는 트럭을 타고 가서, 소양강에서 배 타고 춘천까지, 춘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 마장동 터미널에서 내리면, 거기서 비로소 각 개인의 행선지로 향하게 된다.

마장동에서 고참들에게 일일이 경례를 붙이며 인사한 후 나는 봉천동 선교센터로 갔다. 거기에 여러 날 머물면서 오랜만에 만난 형제자매들과 교제를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한 후, 대구 집으로 내려갔는데, 아뿔싸, 미처 생각지 못한 큰일이 벌어져 있었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나를 별로 반기지 않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7. 내가 휴가 나와서 서울에서 며칠 머물고 있을 때, 휴가 소식을 모르시는 어머니께서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우리 중대본부로 면회를 가신 것이다. 대구에서 양구까지 거의 온종일 걸리는 거리인데, 저녁쯤에 거기 도착하여 나를 찾으셨고, 아들은 이미 며칠 전에 휴가 떠났다는 사실을 아시게 된 것이다. 그때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어머니는 가져간 음식을 고참들에게 건네주고는 상심한 마음으로 도로 대구로 내려오셨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나로서는 어머니가 무작정 그 먼 거리까지 면회를 가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참으로 유구무언(有口無言)이었다. 결과적으로 내 일생에서 잊을 수 없는, 엄청나게 불효막심한 사건이 되고 말았다. 

8. 부대로 귀대하자 3소대 고참들이 나를 호출하였고, 나는 거기서 천하에 나쁜 인간으로 찍혀서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다. 휴가 가서 부모님께 전화도 안 하고 애인과 꼭 붙어 있다가 돌아온 후레자식으로 규정되어 무릎을 꿇고 자아비판을 하게 하였다.

그들은 갑자기 윤리 선생이 되어서는 ‘애인보다 부모가 우선이다’, ‘부모 없이 니가 세상에 태어났겠느냐’, ‘서울대에서는 이런 것도 안 가르치냐’, ‘앞으로 군대에서 배울 게 많다’, ‘하나씩 하나씩 쥐터지면서 배우자’, 하면서 나를 가지고 놀았다. 나는 부모님께 큰 죄를 지은 자로서 곤욕을 당해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그들이 주는 희롱을 달게 받았다.

다행인 것은 3소대가 곧바로 휴가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나를 괴롭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우리 2소대뿐 아니라 1중대 전체에서 가장 신임을 받는 김 상병님이 중재를 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 이후부터 김 상병이란 인물이 내 군대 생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9. 이리하여 나의 첫 휴가 스캔들은 일단 막이 내렸지만, 약 1년 후 내가 그 3소대로 징벌성 전출을 가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것은 두 번째 휴가 때 일어난 일인데, 첫 휴가 때보다 더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되지만, 그것은 다음에 공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여파로 2소대에서 3소대로 전출된 것이다. 소대만 바뀐 것이니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병에게는 엄청나게 큰 타격이었다. 마치 옛날에 여성이 친정을 떠나 시집살이하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까. 어쨌든 그것도 약 1년 후에 일어나는 일이므로 다음에 자세히 쓰기로 한다. 

10. 지금 생각하면 나는 다소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군대라는 곳에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어디서나 주님이 계시므로 무슨 큰일이 있겠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의 군대 생활은 기대했던 것,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낯선 세계가 거기에 존재했음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 것이다.


최태영 교수는 경북고등학교, 서울대 중문학과(B.A.),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원 대학원(Th.M. Th.D.)을 졸업했습니다.

美 Yale University Divinity School(Research Fellow) 과정을 거쳤고, 1990년 3월~2020년 8월까지 30년 동안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영남신대 은퇴교수입니다. 또 '교회를 위한 신학 발전'을 위해 연구하는 '교회신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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