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8편 '무장(武裝) 공비(共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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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8편 '무장(武裝) 공비(共匪)'
  • 북한선교신문
  • 승인 2020.11.03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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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신문에서는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의 군 생활 이야기를 담은 '슬기로운 군대생활'을 연재합니다. 대한민국 생활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

1. 10월 5일 추석에 남쪽 철책선을 끊고 침투한 3명의 무장 공비를 잡기 위하여 우리 백두산부대를 비롯하여 인근의 2개 사단이 합력하여 총 3개 사단이 출동했다. 아마 약 2만 명이 움직였을 것이다. 우리는 무장 공비를 잡으러 약 한 달 반을 강원도 양구 인근의 산천을 누비고 다녔다.

수색대는 이런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였기 때문에 가장 앞장서서 뛰어다녔다. 땅굴 탐지작업팀의 경계병 노릇을 하던 우리 잔여 사병들도 거기서 철수하여 수색대 본진에 합류하였다. 장교들은 신병교육대의 대장처럼 무장 공비를 잡아서 출세할 꿈을 꾸고 휘하의 부하들을 독려했다. 

2. 우리는 무장 공비가 은신할 가능성이 가장 많은 북한강 강변에 매복하였다. 매복이란 적의 예상되는 이동로에 먼저 가서 숨어 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섬멸하는 군사작전이다.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이 이 매복 작전을 여러 차례 구사하여 재미를 많이 보았다.

당시 우리는 수십 개의 참호를 파고 3명이 한 조가 되어 매복했는데, 이런 작전에 처음 참여한 졸병들은 어느 조장 밑에 들어가는가 하는 것이 사소하지만 큰 관심사였다. 마음씨 좋은 조장 밑에 들어가면 편한 생활을 할 것이고, 심보가 안 좋은 조장 밑에 들어가면 괴로운 생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특히 이런 야전 활동에서는 지휘자에 따라 분위기가 판이해진다. 

3. 나는 제일 좋은 조장 밑에 들어갔다고 다른 졸병들이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우리 매복조 조장은 계급도 높고 마음씨 좋은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병이 존경하고 사랑하고 가까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고참은 나에게 설명하기를 그는 마치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같다 하였다. 최전방 군인이 제일 그리워하는 대상이 고향 어머니인데, 그 조장에게서 그런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 자애로운 조장의 휘하에 들어간 것이다. 

4. 매복 작전이 열흘쯤 진행된 어느 날 밤, 우리가 매복을 하고 있던 참호의 1시 방향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다. 뭔가 둔중한 것이 나무에 부딪히는 소리, 작은 돌이 구르는 소리 등이 들렸다. 매복한 우리 세 군인은 숨을 죽이고 1시 방향으로 총구를 돌리고 방아쇠 안전장치를 풀고 사격할 자세를 취했다.

조장은 수류탄을 꺼내어 던질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우리가 잡고자 하는 바로 그 무장 공비일 수 있다고 직감하였다. 그렇게 숨을 죽이며 긴장하고 있었으나 더 이상의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긴장한 상태에서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왔다. 

5. 날이 밝아 왔지만 우리는 아무도 참호에서 나가려 하지 않았다. 1시 방향이 꺼림칙하였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조장이 제일 먼저 나가서 기지개를 켜며 세수하러 뒤편의 강으로 내려가고, 다음에 부조장이 주위를 돌아다니며 밤새 이상이 없었는가 점검하고, 졸병인 나는 참호 내부를 정리하면서 일과를 준비하곤 하였다.

그런데 이날은 두 고참이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밤에 있었던 1시 방향의 이상 징후 때문이었으리라. 조장이 불쑥 입을 열었다. ‘날씨 되게 추워졌네, 야, 최일병, 저~기 가서 나뭇가지 좀 주어와, 불피우게’ 하고는 턱으로 1시 방향을 가리켰다. 그때 나는 이등병에서 일등병으로 막 진급하였었다. 1시 방향은 밤새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던 그곳 아닌가.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군대라는 곳이 시키면 해야 하는 곳이라 엉거주춤 일어나 총을 메고 참호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의도적으로 10시 방향으로 향했다. 1시 방향으로는 도무지 갈 수 없었다. 

6. 그런데 조장이 뒤에서 소리쳤다. ‘야, 그쪽 말고 이~쪽으로 가란 말이야.’ 하고는 손으로 1시 방향을 정확히 가리켰다. 나는 순간 매우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이쪽에 나무가 많습니다.’ 그리고는 10시 방향으로 그대로 가려고 하는데, 조장이 갑자기 총을 나에게 겨누면서 말했다.

‘야, 이 새끼야, 죽을래?’ 그 순간 나는 조장의 의도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는 나를 그 수상한 지역인 1시 방향으로 기어코 보낼 작정이었다. 거기에 무장 공비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7. 무장 공비는 일당천(一當千)의 구호를 외치며 엄청난 훈련과 실전을 겸비하여, 체력도 좋고 사격도 뛰어난 베테랑들이라 배웠다. 따라서 무장 공비가 숨어 있는 곳으로 걸어 들어간다면 그들에게 피살되는 것은 사실상 100%였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조장께서 나에게 그곳으로 걸어가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만약 거기에 무장 공비가 숨어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그들의 총을 맞고 거기서 즉사(卽死)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총소리를 듣고, 나의 고참들은 공비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수류탄을 까서 던질 것이고 M16 소총을 그곳으로 난사할 것이고, 그리하여 무장 공비를 잡으면 1계급 또는 2계급 특진에다가 훈장과 포상금을 타고 평생 영광스럽고 멋있게 살 것이다. 

8. ‘야 이 새끼야 죽을래?’ 하고 노려보는 조장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든 사병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아 왔던 자애로운 조장에게 그런 면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또 한 명의 고참인 부조장은 조장의 처사가 옳지 않지만 자기가 당하는 것은 아니니까 침묵하고 모른 척하고 있었다. 비정한 순간이었다.

9. 졸병인 나는 조장의 지시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10시 방향으로 가던 걸음을 바꾸어 1시 방향으로 옮겼다. 이제 무장 공비가 숨어 있으리라 몹시 염려되는 숲속으로 나뭇가지를 줍기 위하여 가는 것이다. 그렇게 약 오십 걸음을 걸어갔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다리가 떨리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10. 나는 M16의 안전장치를 자동으로 놓고 앞을 겨누며 천천히 전진하면서 생각했다. ‘만약 무장 공비가 저기 있다면 그는 이미 나를 보고 총을 겨누고 있을 것이다. 이제 몇 발짝 가지 않아 그는 나를 쏠 것이다. 불과 1분 안에 내가 사살될지 모른다.’ 죽음이 바로 눈앞에서 기다리는 듯했다. 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여기서 죽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렇게 죽으면 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거기서 내가 살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경우는 무장 공비가 거기 없는 것임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 저기에 아무도 없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그저 아무도 거기에 없기만을 바랐다. ‘하나님, 제가 여기서 공비한테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가 죽더라도 하나님을 위해 죽어야지 이렇게 허무한 죽임을 당해서야 되겠습니까? 제발 저기에 아무도 없게 해 주십시오.’ 그 순간만큼은 정말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하나님 외에 아무도 없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11. 그리고, 참으로 다행히도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안도의 숨을 내쉬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도 없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나님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이 이렇게 좋을 수도 있군요.’ 나는 일어나 나뭇가지를 주워서 한 아름 안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터벅터벅 내려왔다. 

12. 두 군인은 아직 참호에서 나오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참호 가까이 오자, 조장은 비로소 총을 내려놓고는 참호 밖으로 나오면서 기지개를 켰다. ‘오늘 날씨 한 번 좋구나.’ 그렇게 내뱉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세수하러 강으로 내려가 버렸다. 참호에 들어가자 잔뜩 긴장한 또 한 고참이 어색한 얼굴로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수고했다’ 하고는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참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13. 그때 일은 제대할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 소대원들은 여전히 그 조장을 자애로운 분으로 사랑하며 존경하며 따랐고 그의 주위에 모여서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기를 좋아했다. 조장 옆에서 침묵하며 그 일을 방조했던 부조장에 대한 유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의 난처한 처지는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었다.

40년이 더 지난 지금, 나는 조장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도 그때의 일을 까마득히 다 잊어버렸을 것이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는 것으로 치부하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어떻게 저런 인간이 다 있을까 싶었으나, 지금은 그런 사람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학이라는 학문을 하고, 신학교라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알게 된 덕분일 것이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이를 알리요”(렘 17:9). 


최태영 교수는 경북고등학교, 서울대 중문학과(B.A.),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원 대학원(Th.M. Th.D.)을 졸업했습니다.

美 Yale University Divinity School(Research Fellow) 과정을 거쳤고, 1990년 3월~2020년 8월까지 30년 동안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영남신대 은퇴교수입니다. 또 '교회를 위한 신학 발전'을 위해 연구하는 '교회신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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