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9편 '기독교 환자와 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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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9편 '기독교 환자와 또라이'
  • 북한선교신문
  • 승인 2020.11.0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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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신문에서는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의 군 생활 이야기를 담은 '슬기로운 군대생활'을 연재합니다. 대한민국 생활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

1. 군대에서도 일요일은 대체로 느긋한 날이다. 눈비가 오지 않으면 때로 늦잠도 잘 수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일요일은 특히 중요한 날이었다. 예배드리러 가기 때문이다. 우리 중대에서는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일요일 오전, 저녁, 그리고 수요일 저녁에는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나는 마치 군종(軍宗) 사병인 양 모든 예배에 반드시 참석하려고 애를 썼다. 처음에는 할 일도 많은데 졸병이 군기가 빠져서 한가하게 예배드리러 간다고 고참들이 핍박을 해댔지만, 나의 완강한 태도를 보고는 왕고참부터 다 인정해 주었다. ‘쟤는 진짜 예수쟁이니까 보내주라’고 한 것이다. 교회에 출석하는 숫자는 주일 오전과 저녁, 그리고 수요일 저녁이 다 달랐다. 주일 오전에 제일 많았고, 수요일 저녁에는 현저히 숫자가 준다.

나는 모든 예배에 반드시 참석하는 사람으로 일찌감치 알려졌으므로 사실상 우리 중대의 군종 사병이나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우리 수색대에는 군종 사병이 따로 없었다. 

2. 교회에 예배드리러 갈 시간이 되면 주번사관이 전달이라는 형식을 통해 각 내무반에 있는 교회 갈 사병들을 집합시켰다. 그런데 전달내용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기독교 환자 집합’이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우리 중대에서는 기독교 신자를 기독교 환자라고 부르고 있었다.

당시에 신앙심이 제법 있었던 나로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한번은 작심하고 주번사관을 찾아가서 말했다. “왜 기독교 신자를 기독교 환자라고 부릅니까? 건강한 신자를 환자라고 하다니, 도대체 말이 됩니까?” 

3. 지금 생각하면 참 당돌한 일이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패기가 제법 있었던가 보다. 나는 졸병(당시 일등병)이었지만 나이도 적지 않은데다 학벌이 워낙 좋았던 탓에, 보이지 않는 약간의 대우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주번사관인 선임하사가 우물우물하며 대답하는데, 자기도 영문은 모르겠지만 옛날부터 쭉 그렇게 해왔단다.

그래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 말했다. “선임하사님, 옛날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은데 앞으로는 기독교 신자라고 정확하게 좀 불러 주십시오.” 그날의 주번사관인 그 선임하사는 볼이 발그스레한 사람으로서, 나처럼 수색대에는 별로 맞지 않을 것 같은, 마음씨가 착한 분이었다. 

4. 다음 주가 되자 그 주번사관은 ‘기독교 신자 집합’이라고 정확하게 전달 명령을 내렸다. 나는 속으로 의기양양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마치 큰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까만 일등병이 하늘같이 높은 주번사관의 마음을 움직여 전달 구호를 바꾸게 하였으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나는 속으로 잔뜩 즐거워하였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얼마 후 끝나고 말았다. 여기저기서 사병들이 주번 사관에게 항의한 것이다. ‘기독교 신자가 뭐냐, 환자가 더 좋다’는 것이었다. 선임하사가 고참들하고 의논을 좀 하더니, 다시 ‘기독교 환자 집합’으로 원위치(原位置) 되고 말았다. 나는 속이 상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그들은 기독교 환자라고 부르기를 좋아하는가?’

5. 당시 우리 중대에는 ‘또라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었다. 사회에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말이었다. 말의 뜻은 느낌으로 대략 알 수 있었지만 정확하게는 몰랐는데, 아마도 그 어원이 ‘돌(石) 아이’이든지, 아니면 ‘돈 아이’ 곧 머리가 돈 아이라는 뜻인 듯했다. 이게 어떨 때 사용되었느냐 하면, 남달리 이상하게 행동하는 사람, 예를 들면 정신병자 같은 짓을 하는 사람에게 주로 적용되었다. 평소에는 멀쩡하다가 어려운 일만 생기면 몸이 아프다며 의무실에 가서 누워 버리는 사병을 또라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데 환자라고 하니, 그러면 정신병일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또라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 말이 기독교 신자에게도 적용되었다!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6. 군대에서는 웬만한 것은 자급자족해야 하므로 할 일이 많다. 그렇지만 평일에는 교육과 훈련 때문에 다른 잡일을 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주말이 되면 도로보수라든지, 월동준비라든지, 화장실 정화조 청소 등의 일을 시킨다.

그런데 이런 작업시간이 되면 이유를 만들어 잘 빠지는 사병들이 있었다. 그중에 소위 기독교 신자들이 한 역할을 하였다. 평소에 하는 행동을 봐서는 전혀 신자가 아닌 것 같은데, 주일만 되면 신자행세를 하는 사병들이 그들이다. 평소에는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음담패설에, 욕이란 욕은 다하면서도 일요일만 되면 예배드리러 교회 간다고 나서니 다른 사병들이 어이없어 한 것이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예수쟁이들은 착한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칭 예수쟁이들이 전혀 예수쟁이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보다 한참 위의 일병으로 ‘또라이’로 불린 사병이 있었다. 그는 귀찮은 일이 생기면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칭 기독교 신자였다. 그는 성수주일(聖守主日)에 목숨을 걸다시피 했다. 주일이 오면 일찍부터 옷 갈아입고, 전투화 닦아 신고, 성경책 꺼내어 품에 안고는 ‘기독교 환자 집합’ 전달만 기다리는 것이었다. 

7. 고참들 대부분은 그를 진짜 신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를 안 믿는 그들이 봐도 그는 진짜 신자일 수가 없었다. 가끔 고참들은 그 일병을 불러 세우고는 기도 한번 해 봐라, 사도신경 외워 보라 하면서 테스트를 할 정도였다.

그 일병은 우리 소대의 대표적인 ‘또라이’였는데, 모든 기독교 신자를 또라이라고 부르게 된 데에는 아마도 그가 한몫하지 않았나 싶었다. 좌우지간 우리 중대에서는 기독교 신자를 또라이라고 했고, 주일과 수요일 교회 갈 때는 통용되는 명칭이 ‘기독교 환자’였다. 

8. 주일이 되면 소위 기독교 환자들이 단체로 트럭을 타고 제법 번화가에 있는 백두산교회로 예배드리러 간다. 교회 근처에 내려주면 다수의 사병들은 교회에 들어가지는 않고 어딘가 다른 데로 샌다. 그리고 예배 끝나는 시간 맞추어 나타나 트럭을 타고 부대로 돌아왔다.

내가 봐도 이런 사병들은 기독교 신자라기보다는 환자에 가까웠다. 평일에는 멀쩡하다가 일요일이 되면 도져서 환자가 되고, 다시 월요일이 되면 멀쩡해지는 또라이 환자였다. 이러니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자는 ‘또라이’, ‘기독교 환자’라고 부르게 된 것이리라.

9. 신자를 환자 취급하는 ‘기독교 환자’라는 말이 몹시 귀에 거슬리고 불편했었다. 그러나 어떡하랴. 내가 생각해도 그들은 신자라기보다 환자였으니까. 전역한 후 교회의 사역자가 되고 나서 살펴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에서도 기독교 환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신자인 척하고 산다면 환자가 아니겠는가? 물론 명백한 차이는 있었다.

군대에서는 스스로 또라이인 줄 아는 환자들이었지만, 사회에서는 자기가 또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진짜 환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군대에서도 그렇고 사회에 나와서도 그렇고, 또라이 신자들, 곧 기독교 환자들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많은 모욕을 당하고 계실까?


최태영 교수는 경북고등학교, 서울대 중문학과(B.A.),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원 대학원(Th.M. Th.D.)을 졸업했습니다.

美 Yale University Divinity School(Research Fellow) 과정을 거쳤고, 1990년 3월~2020년 8월까지 30년 동안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영남신대 은퇴교수입니다. 또 '교회를 위한 신학 발전'을 위해 연구하는 '교회신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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