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10편 'GP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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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10편 'GP 투입'
  • 북한선교신문
  • 승인 2020.11.0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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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신문에서는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의 군 생활 이야기를 담은 '슬기로운 군대생활'을 연재합니다. 대한민국 생활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최태영 영남신대 조직신학 교수.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

1. 내가 소속된 사단 수색대의 본 임무는 GP 근무인데, GP는 Guard Post의 약자로 DMZ 안에 있는 적정(敵情)감시초소다. DMZ는 demilitarized zone의 약자로 비무장지대를 가리킨다. 6·25 동란의 휴전 조약으로 남북 간에 완충지대로서 DMZ를 설치하였는데,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2km에 북방한계선이 있고, 남쪽으로 2km에 남방한계선이 있다.

남방한계선에는 두꺼운 철책을 설치하고 GOP(관측소) 근무를 맡은 전방부대의 병사들이 지킨다. 참고로 GOP에서 한참 남쪽으로 민통선(민간인통제선)이 있는데, 민간인은 넘어올 수 없고 오직 허가받은 군인들만 출입할 수 있다. 

2. 무장공비 수색작전이 끝나자 곧바로 GP에 올라갈 준비를 하였다. 나보다 두 달 정도 빠른 병사들도 GP는 처음이므로 긴장된 상태에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다. 고참들에 의하면, GOP 철문을 열고 DMZ로 들어가서 GP로 올라갈 때 너무 무서워서 팬티에 오줌을 싸는 놈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GP에 처음 들어오는 사병에게는 제일 먼저 팬티 검사를 한다나.

고참들은 틈만 나면 졸병들에게 GP가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며 무용담(武勇談)을 자랑하였다. 그중에 나에게 제일 충격적인 것은 GP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곳이라는 것이었다. 남북 간에 전쟁이 터지면 제일 먼저 박살 나는 곳이 GP란다. GP는 적정을 감시하기 위하여 DMZ 내 산꼭대기에 위치한다. 적의 시야로부터 은폐된 곳이 아니라, 적을 더 잘 감시하기 위하여 아군의 위치를 드러내고 있는 곳이다. 우리는 너희를 요렇게 감시하고 있으니 허튼짓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러니 적으로서는 아군 GP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적의 전방에 있는 여러 포병대가 유사시 아군 GP를 정밀 타격하기 위하여 항상 정조준 상태에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쟁이 발발하면 1분 이내에 적으로부터 수십 발의 포탄을 얻어맞게 된다. 전쟁이 발발하면 5분 이상 생존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려면 GP에 근무하는 동안 전쟁이 발발하지 말아야 한다. 

3.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주의 종이 되기를 서원했다. 주께서 내 인생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시라고 기도했다. 나는 군대라는 어정쩡한 과정을 얼른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 주님께 본격적으로 쓰임 받기를 기도했다. 군대는 빨리 벗어버려야 할 거추장스러운 짐이라 여겼다. 주님을 위한 나의 본격적인 사역은 전역한 후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군대에서 죽는다는 것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나를 쓰시기 위해서는 군대에서 죽게 하시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보니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논산훈련소로 징집될 때만 해도 군대 생활을 후방 어디에선가에서 룰루랄라 하면서 보내게 될 줄 알았는데,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곳, 공수부대(空輸部隊)도 두려워한다는 GP에 들어갈 줄이야! 나는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려고 작정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생겼다. 

4. 그래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동안 주님과 나와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군대에서 죽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가문(家門)에서 나를 픽업하여 요렇게까지 인도하셨으면 무언가 결실을 하셔야지 GP에서 개죽음 당하게 하시면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나는 낮에 대공초소(對空哨所) 근무를 자원하여 나가서는 종일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다. 어떻게 하면 GP 투입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많은 생각 끝에 드디어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 결론은 나중에 신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예화(例話)로 여러 번 사용했었다. 

5. 첫째, 하나님은 계시든 아니 계시든 둘 중 하나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우리 인생에는 영원한 것이 없고, 그렇다면 궁극적인 의미도 없는 것이다. 인생에 궁극적 의미가 없다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내일 죽어도 좋고 10년 후에 죽어도 좋고, 오래오래 살아도 좋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GP에서 죽어도 좋은 것이다. 그러니 걱정할 것이 없다. 좀 빨리 요렇게 죽는 인생도 있는 것이니까. 

6. 둘째,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가 GP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께 달렸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어디나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기도 계시고 GP에도 계신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가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 

7. 셋째, 내가 GP에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나는 죽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유의 주님이 함께하시며 지켜주실 것이니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가 GP에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도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기로 하였으니, 못 받아들일 것이 없다. 내가 죽어서 하나님의 일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전전긍긍할 일이 아니다. 

8. 결국, GP에서 죽든지, 살아서 돌아오든지 주님께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쪽이든 주님의 뜻대로 되면 되는 것이니까! 군대 오기 전의 내 생각과 계획이 주님의 뜻과는 달랐다고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남은 것은 사회에서 내가 책임져야 할 부모님과 동생들의 삶을 나 대신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GP로 향하게 되었다. 그래서 팬티에 오줌 싸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9. 우리의 GP 투입은 그동안 GP에 근무하던 2중대와 교체하는 하나의 작전이었다. 이 작전은 적(북조선)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야간에 이루어졌다. 그동안 2중대가 관리하던 3개의 GP를 우리가 넘겨받는 것이었다. 우리 중대의 3개 소대가 각각 하나씩의 GP를 넘겨받는 것이다.

GOP 철문을 통과하여 GP 철문까지 약 1km를 완전군장에다 각종 생필품을 나누어 짊어지고 좁은 길을 비틀거리면서 올라갔다. 2중대 경계병들이 영접하러 나와서 우리를 안내하여 GP 철문을 통과하고 마침내 GP 안으로 들어갔다. GP 밖으로는 불빛이 일절 새어 나오지 않았는데, 어두컴컴한 동굴 같은 벙커(bunker) 안으로 들어가자 희미한 전등이 내부를 은은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두 GP장(소대장)의 의례적인 인사 말씀이 있고 난 뒤 인수인계 절차가 진행되었다.

이 일은 우리 소대 살림살이를 맡은(*군대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있는데 기억이 안 남) 박 상병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왕고참이 나보고 잘 보아두라고 했다. 나중에 내가 소대 살림을 맡게 될 거라는 것이다. 그러자 김 상병이 나서서 아니라고, 최 일병은 다른 할 일이 있으니까, 소대 살림은 박 일병이 받게 해 달라고 왕고참에게 부탁했다.

박 일병은 나보다 몇 개월 빠른 일병인데, 대학에 입학만 하고 입대했는데 성실하고 일하는 솜씨도 아주 좋은 분이었다. 김 상병은 상병 고참으로서 병장들의 신임을 받는 분이었다. 왕고참이 받아줌으로써 박 일병이 민첩하게 인수인계 조에 들어갔다. 김 상병이 최 일병은 따로 할 일이 있다고 한 것은 곧 알게 되었지만, 예배를 주관하는 일이었다. 

10. 인수인계가 진행되는 동안 몇 번 실랑이가 있었다. 박 상병이 무언가를 따지고 들었고, 저쪽에서는 군대에서 이 정도면 되었지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하소연을 하곤 하였다. 다들 지쳐있는 터라 대충 마무리하고 2중대 병력을 전송하였다. 그리고 우리 GP장(소대장)의 짧은 담화를 시작으로 GP 근무가 시작되었다.

우리 GP에는 이날 투입된 우리 소대원 30여 명뿐만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던 군견(軍犬)병과 관측소 장교와 관측병들이 모두 5~6명 있었다. 벙커 안 내무반에 각자 잠자리를 배정받고, 또 동서남북 4곳의 초소 근무편성표를 확인한 후 취침에 들어갔다. 잠자리에 누워 기도하며 DMZ에서의 첫날 밤을 맞이했다.


최태영 교수는 경북고등학교, 서울대 중문학과(B.A.),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원 대학원(Th.M. Th.D.)을 졸업했습니다.

美 Yale University Divinity School(Research Fellow) 과정을 거쳤고, 1990년 3월~2020년 8월까지 30년 동안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영남신대 은퇴교수입니다. 또 '교회를 위한 신학 발전'을 위해 연구하는 '교회신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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