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11편 'GP에서 첫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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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최태영 교수의 '슬기로운 군대생활' 11편 'GP에서 첫 예배'
  • 북한선교신문
  • 승인 2020.11.1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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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신문에서는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의 군 생활 이야기를 담은 '슬기로운 군대생활'을 연재합니다. 대한민국 생활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
최태영 영남신대 은퇴교수(조직신학).

1. GP에 올라오기 직전 12월 12일에 백두산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내가 세례를 받자 고참들이 깜짝 놀랐다. 독실한 신자인 줄 알았는데, 이제야 세례를 받다니……. 나는 초신자는 아니었다. 대학 다닐 때는 신학생도 아니었지만, 전도사처럼 전도하며 양육하는 일이 내 본업인 듯이 살았다.

그러나 세례를 받을 기회가 없었다. 내가 몸담고 있던 곳은 대학생 대상의 선교회였는데, 거기에는 세례를 주실 목사님이 안 계셨기 때문이다. ‘성서 한국, 세계선교’를 지향하는 그 선교회는 성경공부와 성경대로 살아가는 훈련을 열심히 하였지만, 세례와 성찬은 없었다. 

2. 세례받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주일 오전 예배에 참석했는데, 주보에 오늘 저녁에 세례식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자 세례를 받고 싶어졌다. 예배 끝나고 목사님께 상담하려고 계획했는데, 우리 인솔자가 급한 일이 생겼다고 빨리 돌아가자고 사병들을 독촉하는 바람에 그냥 돌아갔다.

저녁 예배 시간이 가까이 오자 주번 사관에게 좀 일찍 교회로 출발할 수 없을까 하고 부탁을 했지만, 예배 시간 직전에야 도착했다. 나는 급히 목사님 사무실로 달려갔는데, 목사님은 그때 목사 가운을 입고 성경책을 챙겨서 막 예배당으로 들어가시려던 참이었다.

목사님과 1:1로 처음으로 대면했다. 오늘 세례를 받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간단한 질문을 하신 다음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고 예배당 제일 앞줄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3. 그리하여 세례를 받았는데, 그날 고참들이 이 광경을 보고 나의 정체를 의심했다. 그동안 예수 열심히 믿는다고 하더니 아직 세례도 안 받았으니, 나도 군대 또라이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의심할 만했다.

하여튼 12월 12일은 나에게 의미 있는 날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서울에서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12.12 신군부(新軍部) 쿠데타의 날이었던 것이다! 

4. 그때쯤 김 상병이 나를 불러 물었다. 예배를 인도한 경험이 있느냐고. 많이 있다고 답하자, 그는 안도하면서, GP에 올라가면 자체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네가 인도하라고 하였다. 그때만 해도 GP가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으로는커녕 그림으로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서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 것인지 상상이 안 되었지만, 속으로는 이런 횡재가 있나 싶었다.

당시의 나의 신앙 상태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순교도 불사할 정도로 뜨거웠기 때문이다. 군대에 와서 예배를 드리며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만약 그런 환경이 주어진다면, 세상에 그런 행운이 또 어디 있겠나 싶었다. 

5. 드디어 GP에 투입되고 나서 첫 주일을 맞이했다. 김 상병이 주도하여 벙커 안 내무반에서 예배드릴 준비를 마쳤다. 양쪽 침상에 줄을 맞추어 앉게 하고, 김 상병이 복음성가로 분위기를 띄웠다 소대원들이 잘 따라 하였다. 예배 분위기에 제법 익숙해져 있었다. 지난번 GP 때 이런 식으로 예배를 드렸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복음성가를 재미있게 장난스럽게 불렀다. 손뼉도 치고 중간중간에 ‘비빠빠 룰라’ 하면서 추임새도 넣으며, 자기 멋대로였다. 열기가 고조되자 김 상병이 분위기를 정돈하고는, 이제부터 예배 인도를 최 일병이 할 것이라고 안내를 하였다. 그리고 예배는 엄숙하게 드려야 하니까, 예배드릴 때만큼은 최 일병을 목사님으로 생각하고 절대복종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상병들 이하 일병들, 그리고 우리와 같이 근무하는 군견병들은 최 일병 말에 따르지 않으면 나한테 죽는 줄 알아라 하며 엄포를 놓고는, 또 병장들에게도 좀 협조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를 앞으로 불러 내었다. 나는 나가자마자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진지하게 하고 있는데, 병장 하나가 “기도가 길다”라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킥킥거렸다. 나도 웃음이 나왔지만 겨우 참고 무사히 마쳤다.

이제 찬송가를 하는데 또 그 병장이 1절만 하자 하였다. 김 상병이 그 병장한테 작은 소리로 “아까 부탁드렸잖아요, 좀...” 한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 그랬구나, 얘야, 그럼 니 마음대로 해봐라, 그래도 눈치 있게 하는 거 알겠제?” 분위기가 다시 해이해지자 김 상병이 또 나서서 한마디 거들었다.

“여러분 오늘은 최 일병이 처음 하는 것이니까, 긴장도 되고 실수도 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최 일병이 아니라 김 상병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잘 협조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더 보탰다. “병장님들은 편하게, 자유롭게 하시되 그래도 예배는 잘 진행되도록 다시 한번 협조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6. 나는 찬송가를 1절과 4절만 하겠다고 하고는 인도했다. 다음으로 성경을 찾아 읽고는 설교를 했는데, 설교 제목은 “때리지 말자!” 이었다. 내가 이 제목을 정한 것은 우리 내무반 출입문 윗벽에 그렇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제목을 꺼내는 순간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싸해졌다. 병장들이 일시에 나를 쏘아보는 듯했다. 나는 속으로 어지간히 당황했다. 그러나 이왕 엎질러진 물, 그냥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제목을 정한 경위, 사람이 왜 때리게 되는지, 때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 졸병이 고참에게 바라는 것, 고참도 옛날에는 다 졸병이었다, 등등 미리 준비한 대로 또박또박 설교했다.

설교하는 동안, 진짜로, 기침 소리 하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엄숙하였다. 모두 예배 끝난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상하며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김 상병을 힐끗 살펴보니 그도 매우 당황한 듯, 고심하는 듯했다. 

7. 그날 나는 완전히 개 박살 날 뻔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눈치가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예배가 끝나자 모두 침묵 모드(mode)에 빠졌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전(全) 병장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서 김 상병에게 따라오라고 하였다.

전 병장은 우리 소대 서열 2위였지만 1위와 2주 차이라서 서로 맞먹는 사이였다. 서열 1위는 사람이 착하고 순한 사람이라 졸병들이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 병장은 진짜 두려운 존재였다. 그가 한번 인상을 쓰면 모든 사병이 벌벌 떨었다. 소대장까지도 그의 기세에 눌려 지낼 정도였다.

두 사람이 나간 다음에도 우리는 모두 여전한 침묵 속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 있었다. 장본인인 내가 그때 무슨 마음이었는지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예상 못 한 상황에 그저 넋을 놓고 있었을 것이다. 

8. 한 20분쯤 지났을까, 두 사람이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전 병장이 말을 꺼냈다. “너희들 오늘 목사님 말씀 잘 들었제? 이제부터 때리는 놈 있으면 나한테 맞아 죽을 줄 알아라. 그리고 인마 너희들, 때리지 않겠지만 맞을 짓 제발 하지 마라, 알겠나?” 모두 “예,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전 병장은 갑자기 기분 좋은 소리로, “와, 우리 소대 진짜 또라이 하나 들어왔네. 와, 내 평생 이런 또라이는 처음 본다.” 하였다. 다른 고참들이 모두 눈치를 채고는 “맞습니다. 저도 이런 또라이는 앞으로 절대 못 볼 낍니더.” 하고 맞장구치면서··· 그 긴장된 사태는 희한하게 수습되었다. 

9. 그날 저녁 야간 보초를 같이 서면서 김 상병이 이야기해 주었다. 자기가 불러나갔을 때 죽었다 싶었단다. 나가서 전 병장 앞에 그냥 무릎 꿇고 두들겨 맞을 각오를 하고 기다렸는데, 전 병장은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고는 한 모금 빨면서 묻더란다.

“도대체 내가 모르는 구타(毆打)가 있었느냐.” 김 상병이 얼른 눈치를 채고는, 최 일병이 말한 것은 무슨 일을 알고 한 것이 절대 아니고, 전 병장님과는 진짜 아무 관계도 없고, 오늘 설교는 성경에 있는 대로 그냥 원칙적인 이야기일 뿐이라고 대답했단다.

그러자 전 병장은 성경에 그런 것이 있느냐고 또 묻더란다. 그래서 자기도 잘 모르지만, 그 자리에서는 “있습니다. 최 일병이 다 잘 압니다”라고 대답했다면서, 성경에 때리지 말라고 한 것이 진짜 있느냐고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어쨌든 자기가 그렇게 대답하자, 전 병장이 가만히 생각하더니, “그 참 웃기는 놈이네, 물건이네” 하더니 담배를 다 태우고 나서, “들어가자, 얘들 걱정할라”라고 했단다. 그리고 김 상병이 나에게 말했다. “오늘 예배 진짜 잘 되었다”라고.


최태영 교수는 경북고등학교, 서울대 중문학과(B.A.),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원 대학원(Th.M. Th.D.)을 졸업했습니다.

美 Yale University Divinity School(Research Fellow) 과정을 거쳤고, 1990년 3월~2020년 8월까지 30년 동안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영남신대 은퇴교수입니다. 또 '교회를 위한 신학 발전'을 위해 연구하는 '교회신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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